
때로는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인 법이었다.
서연은 해골 손가락을 향해 달려들기로 마음먹었고, 그러자마자 몸이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바람을 타는 눈송이처럼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설명이 굳이 필요해? 칼을 들었으면 써야지.
서연은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꼭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해골 손가락의 마디와 마디 사이, 연골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순간 섬광이 번득였다.
해골이 움찔하며 제 손을 물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충돌의 반작용으로 서연 역시 아래로 밀려났지만, 금세 다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또 한 번 더. 서연은 거듭 검을 휘두르며 해골을 뒤로 몰아붙였다.
서연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해골의 뼈마디에 금이 갔다.
이거지.
서연은 내기에서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그러나 불길한 소리가 또다시 울려퍼졌다.
해골 손은 전처럼 물러나기는커녕, 잠시 멈칫하더니 파리를 잡듯 민첩하게 허공을 갈랐다.
손끝에 마찰로 인한 불꽃이 이는 것이 생생하게 보일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연은 경기장 바닥으로 처박혔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픔이 파도쳤다.
“괜찮아?!” 혜린과 소현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왔다.
저리 가 있어.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서연은 손끝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윽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렸다. 해골이 서연을 거꾸로 집어 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연 본인의 처지보다도 이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에 있었다.
채연을 시작으로 설린을 비롯한 몇몇 멤버들이 줄다리기하듯 서연을 잡아끌려고 들었다.
축 늘어진 서연의 팔과 넓적한 칼날에 멤버들의 손이 다닥다닥 붙었다.
이 바보들아.
서연은 속으로 한탄했다.
해골이 하늘 높은 곳에서 서연을 탁 놓더니, 먼지를 털듯 경기장을 쓸어쳤다.
서연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공중에 흩뿌려진 멤버들이었다….
맹공격에도 끄떡없던 검 역시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네 조각으로 갈라졌다.
나 없이도 잘해야 해.
서연의 눈이 스륵 감기더니 의식이 끊어졌다.
잠시 후….
설린은 회색 사막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두컴컴한 하늘과 돌투성이 땅 외에는 특기할 만한 게 없었다. 마치….
“여기 달이야?” 카에데가 침묵을 깼다.
“달인데 우리가 어떻게 숨을 쉬어?” 시온이 눈을 크게 뜨며 끼어들었다.
“나야 모름.” 카에데가 어깨를 으쓱하자 곱슬머리가 붕 떠올랐는데, 손으로 직접 내리기 전까지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우리 서연 언니가 무슨 칼 든 것도 봤잖아.” 지연이 침착하게 말했다.
“이상한 거대 해골 같은 것도 봤고. 설명할 수 없는 일투성이야. 그러면 우리가 달로 튕겨 나온 것도 말은 되지.”
그렇긴 하지.
설린은 속으로 수긍했다.
문제는 서연이 들고 있던 칼의 조각이 자기 손에 쥐여 있다는 거였다.
그게 암시하는 바는…. 설린은 바지 주머니에 쇳덩이를 쑤셔 넣었다.
지금 설린의 눈에 보이는 멤버들은 총 6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열여덟은 여전히 지구에 남아 있는 거였을까?
멤버들과 손짓, 발짓까지 섞어 영어로 대화하던 활동 초기의 고립감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뒤로 밀려난 듯한, 이야기의 엑스트라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카에데, 시온, 지연이 이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열띤 논쟁을 이어가는 동안, 린이 종종걸음으로 소현에게 다가가 머리를 기댔다.
“언니, 우리 이제 어떡해?”
린의 걱정어린 질문에, 소현은 평소와 달리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린이 옅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멤버들은 제자리를 빙빙 돌며 우왕좌왕했다.
그렇다면 설린이라도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
“그만!”
설린이 손뼉을 치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우리, 집 갈 거예요.” 설린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외쳤다.
설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웅성거리다가 설린의 뒤를 따르는 게 기척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린의 발걸음이 느릿해질 무렵, 린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소짱이 설린 믿음직하대.”
그러면 멈출 수 없지.
설린은 이를 악물었다.
다리가 아픈 것도, 다른 멤버들만큼이나 막막한 것도 감추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풍경이 펼쳐졌다. 달 한가운데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고,
아주 오래전 인류가 달에 보냈을 월면차 한 대가 그 앞에 있었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 한 채만 한 타원형의 보석이었다.
보석의 꼭대기에 달린 쇠사슬을 눈으로 좇자….
거대한 고래의 골격이 하늘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길쭉한 해골. 녀석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머리는 태양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거대했고, 손가락처럼 보이는 세 가닥의 긴 지느러미뼈가 지구에 닿아 있었다.
공연장에서 봤던 그것이 틀림없었다.
“이게 다 뭐야?” 카에데의 질문에, 넋을 놓은 설린은 답하지 못했다.
빈틈을 보이자마자 그동안 억눌러 왔던 문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린이 월면차로 향했는데, 온몸이 고스란히 차를 통과해 버리는 바람에 그 무엇도 조작하지 못했다.
유령이라도 된 것 같았다.
“우리 죽은 거야?” 린이 다시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음으로는 지연이 설린의 바지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칼 조각을 뺏어 들었다.
“그거 서연 언니 거였잖아…. 언니 어떻게 된 거야?”
그 뒤로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질문들에, 설린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생각해, 피라다 분락사, 생각해.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뭐야?
그러나 설린의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의젓하지 않았다.
“몰라요!”
적막이 감돌았다.
“나도 몰라! 지금 내가, 제가 뭐 하는지도 모르겠고,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설린은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설린은 잔뜩 긴장한 채로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내 소현이 설린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우직하게 안 왔으면 여기까지도 못 왔을 거잖아. 설린이 덕분이야.”
때론 말 한마디가 수천 가지 불안을 한 번에 종식하는 법이었다. 설린은 소현을 꽉 끌어안았다.
“땡큐.”
마음이 묘하게 차분해졌다. 세상에는 주인공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법이었다.
억지로 앞에서 잡아끄는 대신 모두를 뒤에서 받쳐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할 수 있어. 방법을 찾아낼 거야. 내가 아닌 우리가.
“아니, 되게 훈훈한 상황에 미안한데,”
시온이 검지를 치켜들었다.
“아까 우리가 물체를 슉 통과했잖아요. 아무것도 못 잡는다는 거잖아.
그러면 먹을 것도 못 잡는다는 뜻 아냐? 나는 지금 그게 제일 두렵거든?
달에 있다 보니까 뻥튀기가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얼마 전에….”
“일단 집에 가기나 해야지.” 소현이 장난스럽게 시온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랜만에 멤버들 사이 웃음꽃이 피어났다.
다행이다.
설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는 차분한 탐구가 이어졌다. 한 가지 사실이 설린의 흥미를 끌었는데, 멤버들은 오직 오직 월면차만을 만지지 못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거대 보석이나 버스 정류장 등은 전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어, 이거….”
그러던 와중, 보석을 관찰하던 소현이 머뭇거렸다.
“말해 줘.” 설린이 부탁했다. 자신이 의지했던 만큼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싶었다.
“캐미오다. 로켓 같은 데 쓰이는….”
“로켓?!” 좀전까지 의기소침해 있던 카에데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다른 멤버들이 무어라 말리기도 전에, 카에데의 전력 질주가 이어졌다.
날아오르듯 뛰어올라, 암벽 등반하듯 보석의 툭 튀어나온 부분을 붙들었다. “그러면 집에 갈 수 있지 않아? 가자!”
“아니, 그…. 로켓(Rocket) 말고 로켓(Locket)…. 목에 거는 거. 저렇게 보석에 뭘 새겨 놓는 걸 캐미오라고 하거든.”
소현이 멋쩍게 웃으면서 정정했다.
소현의 말마따나, 그 규모 때문에 체감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이었다.
몸을 동그랗게 만 우주 고래가 중심에 있었고, 그 주변을 다양한 여자들이 둘러쌌다.
실선으로 돋을새김된 스물네 명의 여자로부터, 점선으로 된 또다른 여자들이 튀어나왔다.
얼핏 보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여자들이 고래를 사냥하거나 막는 모습처럼 보였다.
우리인가?
설린이 소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 와중에 다른 멤버들은 보석에 매달려 달을 벗어난다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런데, 에데 말도 일리가 있어. 괜찮아, 나 이거….” 지연이 제자리에서 거듭 콩콩 뛰었다.
균형을 잡으려는 듯 팔을 뻗기도 하면서. “감 잡은 거 같아.”
그러고는 먼저 올라탄 카에데의 팔을 붙들었다. 그뿐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고래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지구에서 들었던 것과 동일한 뱃고동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더니, 보석이 달 표면을 질질 끌며 딸려 가기 시작했다.
“지금 아니면 늦어!” 지연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어떡해? 저거 타?” 시온이 발을 동동 굴렀다.
설린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시온이 이야기하는 대상은 고래의 목걸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피리처럼 생긴 비행물체 하나가 버스 정류장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인형 피터만큼이나 작은 분홍색 외계인들이 바위틈에서 기어나와 하나둘씩 우주선에 탑승했다.
토끼와 여우를 반반 섞어 놓은 듯한, 기묘한 생명체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설린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우주선에 올라타는 것이 지구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목걸이에 새겨진 캐미오, 24명의 여자 조각이 더 흥미롭기도 했다. 이렇게 머나먼 곳까지 튕겨 나온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뛰어요.” 설린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를 신호로 멤버들이 거대 보석을 향해 달려 나갔다. 6인 모두가 대롱대롱 매달리기 무섭게 보석이 달의 표면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자마자 멤버들의 의상 역시 변화했는데, 기존의 얇은 공연용 의상 위로 망토와 고풍스러운 리본 등이 묵직하게 추가되었다.
빛을 튕기는 달의 표면이 고스란히 옮겨붙기라도 한 것처럼, 거친 동시에 은은한 광택을 지닌 재질이었다.
“꽉 잡아!” 카에데가 외쳤다.
관성 때문인지 보석 전체가 앞으로 쏠려 나갔다.
광활한 우주를 가로질러…. 수많은 별을 스쳐 지나가…. 그대로 고래 괴물의 입속으로.
한편, 또 다른 곳….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신위를 깨웠다. 채연이 얼굴까지 떨어 가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뭐? 뭔데?”
“나가 봐.”
신위는 채연의 말을 따랐다. 하얀 쇠문을 열고 나서자 거대한 홍염(紅焰)의 바다가 펼쳐졌다.
태양 한가운데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이글거리는 빛과 열기가 기승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건물의 방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작은 요트의 선실이었다. 불타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내던져진 셈이었다.
“잠시.” 신위는 눈을 비볐다. 뼈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요트를 집어삼킬 기세로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저게 대체 뭐야?”
유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서 내가 오늘 일정 좀 재검토하자고 한 건데.”
갑판 위는 혼돈 그 자체였다. 원래는 별다른 지시 없이도 제 할 일을 알아서 잘 찾아내는 멤버들이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입을 위협적으로 벌린 고래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피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마유는 뱃멀미라도 하는지 난간을 붙들고 벌벌 떨고 있었고, 혜린과 유연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단합은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근데, 멀리서 보니까 좀 귀엽지 않아요?” 쪼그려 앉아 있던 채원이 말끝을 올렸다.
“뭐가 귀여워!” 채연이 선실 문을 열고 튀어나오며 쏘아붙였다.
“꼬물거리는 게 귀엽잖아~ 키링 같은 걸로 팔았으면 샀을 거 같아요.”
꿈꾸는 듯한 채원의 목소리도 도움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보다도 충격적인 건 유연과 혜린의 대화에서 엿들은 하나의 단어였다.
“뛰어?” 신위가 성큼걸음으로 다가가서는 끼어들었다. “누가 뛰어내린다고 했어요?”
“아니, 지금 분명히 배를 목표로 쫓아오는 거니까. 딱히 불타 죽지도 않는 김에 첨벙 뛰어들면 어떨까 해서….” 혜린이 시선을 피했다.
“바보?”
신위가 원래 생각했던 건 배가 유일한 희망인 상황에서 이걸 버리겠다고? 에 가까운 문장이었지만
절박한 상황에서는 급작스럽게 말이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신위는 위급한 순간에 누군가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그 후보자가 자신밖에 보이지 않았다.
“tripleS!” 신위가 어깨와 허리를 죽 폈다. “우리 안 죽어요!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보자, 어때? 목표는…. 저기.”
신위가 가리킨 곳은 반투명한 분홍색 비눗방울에 감싸인 도시였다. 버려진 듯 황량했지만, 적어도 쉼터가 될 만한 곳 같았다.
지금까지 모두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양 한가운데의 고대문명은 기묘한 축에도 끼지 않았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혜린이 먼저 당돌하게 신위를 지지했다.
“가 봅시다!”
그래,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보단 이게 낫지.
신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멤버들에게 역할을 배정했다.
유연과 채연을 조타실로, 채원과 혜린을 돛으로 보냈으며 자신은 갑판 위에서 이들을 총괄했다. 문제는 서는 것조차 쩔쩔매고 있는 마유였다.
“마유.” 신위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마유는 뒤를 보면서 저게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말해야 해. 알았지?”
조타실과 선실은 전부 뱃머리 쪽에 있었다.
“나한테 맡겨도 돼?” 마유가 울먹였다. “나 바비 담당이잖아.”
“아니, 마유.” 신위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중 가장 똑똑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잖아. 자신을 믿자.”
마유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후 팀원들은 고래를 이리저리 피해 가며 요트를 몰았다.
그러나 도시와 가까워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해골 고래는 지나치게 빨랐고.
녀석의 공허한 두 눈이 손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쳤다.
이제 어떡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신위의 머릿속에 채원이 한 말이 메아리쳤다.
귀엽지 않아요?
“차라리 저 안으로 가자.” 신위가 대뜸 말했다.
본인이 말하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미쳤어요?!” 혜린이 소리쳤다.
“저긴 못 들어가.” 신위가 보호막에 감싸인 도시를 가리켰다.
“하지만 고래랑은 크기 차이, 압도적이니까, 오히려 멀쩡하지 않을까?”
“이 언니 미쳤나 봐!” 혜린이 따졌다. “우리가 죽을지 말지가 달린 문제인데, 그걸 왜 언니 맘대로 결정해?”
갑작스러운 힐난에 신위의 말문이 막혔다.
내가 잘못한 거야? 난 모두를 생각해서….
“아니야, 저우신위, 편지 교환이라도 하면 맨날 우는 스타일이잖아. 독단이 아닐지도 몰라.”
채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가로막고 나섰다.
“확실해?”
“날 믿어 줘.” 신위가 손을 붙들며 당부했다.
곧 멤버들은 뱃머리를 돌렸다. 어떻게 움직여도 곧 집어삼켜질 게 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했다.
전속력으로 배를 몰아세워 고래의 턱뼈를 통과하는 순간, 신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정박은 의외로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고래의 뼛속은 거대한 회백색 터널처럼 생겼는데, 고래가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다만 그걸 제외하면 발 디딜 공간도 충분했으며 이동하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와, 여기 봐요. 누가 살긴 사나 봐. 밭도 있어~ 고구마 같은 거 키울 수 있으려나. 그러면 눌러앉을 텐데.” 채원이 붕 뜬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난번에도 고구마파이 얘기하지 않았어?” 채연이 피식 웃었다.
“노후의 꿈이에요.”
채원의 발랄한 대답 후, 신위와 일행은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가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문명의 흔적을 따라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반 시가 정도를 내리 걷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직전에 포기했던 도시와 똑같이 생긴 공간이 고래의 뼛속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신위는 홀린 듯 그 경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살아 움직이는 도시. 아니면….
섬뜩한 발상이 절로 일었다. 이 거대한 우주 괴물이 외계 도시들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었을까?
그래서 녀석이 지구에 왔던 걸지도 몰랐다. 모두를 먹어 치워 버리려고.
그 순간, 멀리서부터 둥, 둥 하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고작해야 신위의 무릎 높이쯤 되는 키의 생명체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쫑긋 솟아오른 귀와 자그마한 팔다리,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괴물 같은 분홍색 몸뚱이….
어딘가의 마스코트로 쓰일 법한 외계인이 원을 이뤄 일행을 감쌌다.
공교롭게도, 거대한 기둥처럼 보이는 고래의 갈비뼈에는 전사와 같은 갑옷을 입은 스물네 명의 여자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해 분간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tripleS라는 확신이 들 뿐이었다.
신위가 미심쩍은 눈길로 벽화를 바라보는 동안, 외계인들의 음악은 점점 격렬해져 갔다.
사물놀이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선율이었다. 그 박자에 맞추어 멤버들의 옷 위로 덩굴 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실이나 바늘도 없이 자수가 놓였다. 하얗던 의상은 훨씬 넉넉한 분홍색 천으로 바뀌어 나갔고,
거기에 후드와 프릴까지 더해지자 당장에라도 마법을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데뷔 초 티저에 사용되었던 문구가 절로 떠올랐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녀들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럴싸한 홍보 문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지만, 신위는 이 상황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뭐야, 뭐야 이거? 얘 나 따라다녀!” 혜린이 상체를 잔뜩 움츠린 채로 외계인들을 피해 다녔다.
“아니, 쟤 진짜 동물 무서워한다니까? 귀엽기만 하구만.”
유연이 실없이 웃는 순간, 신위의 시야가 뒤틀렸다. 찰나였지만 작은 외계인들이 전부 위협적인 해골로 보였다가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면 지금의 모습이 위장이고 무시무시한 해골이 본모습이었던 걸까? 신위는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북소리와 함께 멤버들을 에워싸는 외계인 일행이 마냥 귀엽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채연은 “얘들 헬로키티 같아!”하며 외계인들을 반기고 있었고,
채원은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말도 통하지 않는 외계인과 눈을 맞추며 서로의 동작을 따라 했다.
설상가상으로, 저만치에서 손을 흔드는 다른 멤버들이 보였다.
소현, 지연, 카에데, 시온, 린 그리고 설린…. 반가운 건 사실이었지만, 문제는 저 손짓의 의미가 불명하다는 데 있었다.
자신들은 붙잡혔으니 도망치라는 걸까? 아니면 그쪽으로 오라는 걸까?
신위는 곁눈질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직감이 보내는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할까?
아니면 운명처럼 보이는 일련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했을까? 결단의 시간이었다.
Q. 다음 장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1. 일단 춤추시오 / 멤버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며 외계인과 친해진다.
2. 선택받은 전사들 / 외계인들이 멤버들에게 무기를 선물한다.
3. 구출 작전 / 외계인들과 맞서 싸울 각오로, 멤버들에게 달려간다.
4. 전화 받아 / 현장에 없는 멤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우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