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iverS> - 3. Crushing Waves

기대감은 불안보다 빠른 법이었다. 신위가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기도 전에, 외계인들이 까르르 웃으며 멤버들을 인도했다.

“귀엽지?!” 카에데의 활기찬 외침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완전히 다른 천체로 떨어져 나갔던 열두 명의 멤버들은, 재회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았다.

지연과 린은 서로의 의상을 가리키며 커플룩을 맞췄다는 둥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위의 발걸음은 광장이 아니라 구석으로 향했다. 작은 모래밭 앞에, 소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외계인 한 마리가 바닥에 그리는 그림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음, 음. 알겠어. 그리고?”

소현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다가 신위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오, 아름다운데?”

“내가 좀.” 신위가 평소의 장난기를 담아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뭐 해요?”

“얘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거 같아.” 소현이 골똘히 생각하듯 턱을 괴었다.

“그림으로 보니까 확실하네. 원래 이 고래가 멈춰 있어야 하는데….”

소현이 허공에 양손을 올렸다가 파르르 떨어 보였다.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대. 그러니 심장을 찔러서라도…. 고래를 멈추게 해야 우주가 평화로워지는 거지.”

소현의 앞에 있던 외계인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치켜올렸다. 옳은 해석인 모양이었다.

이젠 외계인 말까지 배운 거야? 신위가 감탄하는데, 별안간 치마 주머니 속에서 낯익은 진동이 일었다. 전화기였다.

도대체 우주에서 어떻게 전화가 터지는 건데?

“나경?”

전화기 너머 나경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야, 야, 야, 야, 야.” 거기에 잡음까지 섞여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고래 죽이지 마! 알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신위가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외계인들은 멤버들 앞에서 작은 공연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변신한 tripleS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은 24명의 외계인이 군무를 추었다.

막대기를 창처럼 쥐고 고래의 심장처럼 보이는 공을 쿡쿡 찌르는 동작이 한창이었다.

저걸 하지 말라고? 신위는 다시 나경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서비스 제공 권역 밖이라는 안내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어떡해? 신위가 근심 어린 눈으로 소현을 쳐다보았다.

 

통화 30분 전,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선….

이 난장판을 어떻게 정리하지? 다현이 이를 뿌득 갈았다.

운석처럼 보이는 우주선이 공연장에 추락하자마자 나선 서연의 행동은 용감한 것이었지만,

거대한 뼈 손가락은 그들을 책상 위 지우개 가루처럼 쓸어버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섯 명의 멤버들이 끈적끈적한 청색 바다 한가운데에서 겨우 떠 있었다.

오직 한 명, 무거운 갑옷 차림이었던 서연만 빼고 말이다.

“무리!” 가라앉는 서연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잠수했던 코토네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저기 무슨 해골 상어? 고래? 같은 거 여러 마리 있어. 막 달려들고 난리야.”

“나 잠수 잘하는데.” 서아가 끼어들었다.

“서아야.” 다현이 엄하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너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할 일 다 한 거야. 여기서 한 명 더 잃을 순 없어.”

서아가 울상을 지었다.

잘하는 짓이다, 서다현. 다현은 막내의 시선을 피했다. 한 명을 이미 잃었다고 자인하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조금 더 유한 말로 덮을 수 있었을 텐데도 혹독하게 진실만을 내뱉은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우주선은? 우리랑 같이 여기로 날아왔잖아. 누가 확인 좀 해 줄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경이 알 모양의 우주선으로 헤엄쳐 갔다.

개 헤엄하듯 어정쩡한 자세긴 했지만, 어쨌든 죽죽 나아가긴 했으니 상관없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툭, 툭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에 있었다.

먼지처럼 작았으나, 워낙 단단해서 닿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일었다.

손을 모아 내밀자 자잘한 보석 알갱이들이 한 아름 뭉쳤다.

다이아몬드. 일전에 유연과 이야기하다 재미있는 과학 지식 하나를 주워들은 기억이 있었다.

해왕성에는 다이아몬드 비가 내린다더니.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 수면에 닿을 때마다 물결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동그란 물의 파동은 다른 파동과 겹치는 대신 증간에서 서로에 부딪혔다.

자연법칙을 완전히 어기는 일이었다. 이거 유연 언니가 보면 노발대발하겠는데. 아니면 신기해하거나.

“박살 났다!” 우주선에 도착한 나경이 두 손을 입에 모아 외쳤다.

그래도 비 피할 곳은 되겠지. “코짱.” 다현이 코토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머지 애들 데리고 저기로 피해. 할 수 있지?”

“당연하지.”

코토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윗니를 살짝 드러내는,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가 믿음을 주었다.

다현은 따라가는 척하다가, 모두가 멀찍이 떨어졌을 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이 따가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몇 번 깜빡이니 적응되었다. 뼈뿐인 물고기들이 위협적으로 헤엄쳐 왔다.

무시하면 그만이야. 직진하면 돼. 다현은 눈을 질끈 감고 아득한 아래로 내려갔고, 마침내 서연에게 닿았다.

몸을 아주 살짝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팔이 으스러질 듯했다.

갑옷을 벗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다현의 호흡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제발. 다현은 서연과 갑옷을 통째로 끌어안고 빌었다.

차라리 내가 가라앉을 테니까 서연이를 살릴 힘을 줘. 그런데 나도 사실은 무서우니까, 같이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줘.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서연을 내려앉히던 쇳덩이가 분해되더니 다현을 감싸기 시작했다.

갑옷을 그대로 넘겨받자마자 숨통이 트이고 온몸에 힘이 솟았다.

다현은 트램펄린 위에서 뛰는 것처럼 솟아올랐다. 맑은 소리와 함께 수면이 갈라졌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품 안에 들려 있던 서연이 기침과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이다. 다현은 멤버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우주선 근처로 내려갔다.

삐죽삐죽한 왕관이 머리에 얹힌 게 거슬려, 무작정 코토네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어쩐다냐?” 나경이 안도감과 막막함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신을 못 차린 서연의 머리를 제 무릎에 올려놓고 투덜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얘는 진짜 인생을 게임처럼 산다니까. 나서기 전에 얘기 좀 하지. 같이 결정하면 어디가 덧나?”

맞는 말이야. 다현이 우주선 잔해 위에 주저앉았다.

“날아갈 수 있으면 좋긴 하겠는데….

나 혼자서 너희를 다 데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서연이 옮기는 것도 힘에 부치거든.”

일말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햇빛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고래 꼬리뼈의 윤곽을 드러냈다.

난데없이 지구에 등장했던 녀석이 분명했다…. 악몽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경기가 일었다.

“와, 씨, 뭐야.” 코토네의 격앙된 목소리가 다현의 백일몽을 깨뜨렸다.

“왜, 뭔데?”

“아니, 이거 쓰니까….” 코토네가 은빛 왕관을 가리켰다.

“저 속에서 말이 들렸어. 고래 울음소리가 번역된 것처럼…. 엄마를 살려달래.”

“뭔 소리야, 넌 또.” 나경이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끼어들었다.

“아니, 아니. 정말 들렸다니까? 지금도 들린다니까?” 코토네가 벌떡 일어섰다.“자기는 이상한 예지몽 꿨으면서!”

“아니, 그거랑은 다르지.” 나경이 볼멘소리로 받아쳤다

 “쟤네가 어떻게 말을 해. 무슨…. 무슨 석촌호수에서 펭귄 나오는 소릴 하고 있어.”

“아니야!” 코토네가 빽 소리쳤다. 작은 해골 고래 세 마리가 주변을 빙빙 돌았다.

“확실해, 토네?” 다현이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고래의 텅 빈 눈구멍과 시선이 마주칠 때면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고,

녀석들이 턱을 움직일 때면 잡아먹히진 않을까 두려웠다. 단적으로 말해서, 생긴 것부터가 아름답지 않고 공포스러웠다.

코토네는 이제 수면 위로 고개를 드러낸 고래 한 마리와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오래전엔 고래들끼리 평화롭게 살고 있었대, 여기서.” 코토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려는 것처럼. “그런데 모코들이 얘네를 이용하려고 온 거야.”

“모코?” 니엔이 갸웃거렸다.

“무슨 분홍색 외계인이라는데.” 코토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 우주에서 파동과 입자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해왕성 고래들이래.

그래서 그 능력을 이용하려고 온 거야. 다 큰 어른 고래를 잡아서…. 정지시킨 다음에…. 도시로 사용한 거지.”

“그런데 우리한테 온 거대 고래는 움직였잖아.” 나경이 입을 살짝 내밀었다. “공격하기도 했고.”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거래.” 코토네가 흥분하는 고래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모코들은 여차하면 엄마를…. 그러니까 우리 경기장에 나타났던 거대 고래를 바로 죽여 버릴 거라는데.”

“나 참, 이게 무슨….” 나경이 부르르 떨었다.

“그럼 그냥 자기네들이 날아가서 엄마 구하라고 하면 안 돼? 저거 봐, 잘만 날아다니잖아.”

나경이 손끝으로 거대 고래를 가리켰다.

“아니, 지금 어른 돼야만 날 수 있다잖아.” 코토네가 언성을 높였다.

나경이 어깻짓하며 살짝 물러났다. “진작에 말하지.”

“그럼 우리,” 니엔이 계산하듯 눈알을 굴렸다. “지금 큰 고래 구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날아올라가면 되지.” 다현이 힘겹게 일어섰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다시 날아오르려던 다현의 시도는 그저 뜀박질에 그치고 말았다.

그마저도 우주선 표면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다에 빠질 뻔한 그녀를 니엔이 뒤에서 붙들어야 했고 말이다.

“안 돼.” 니엔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태로는 안 돼요. 뭔가 다른….”

그때, 수면을 지켜보던 서아가 입을 열었다. “같이 가면 안 돼요?”

“같이?”

“네, 고래들이랑 같이.”

아하. 다현은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이 빛나는 은빛 갑주는 혼자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서아, 땡큐.” 다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코토네의 옆으로 다가가,

아직도 흉측하게만 보이는 해골 고래 세 마리가 자신에게 모여들도록 했다.

외적인 아름다움, 그 너머를 봐야 해. 다현이 심호흡과 함께 고래의 머리뼈에 손을 얹었다. 생각 외로 따뜻했다.

이윽고 서연에게서 다현에게로 옮겨붙었던 은빛 물질이 다시금 허공을 활개쳤다.

그것은 복잡하고 가느다란 실타래가 되어 허공을 빙빙 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쌍의 날개가 직조되었고, 고래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상하기 시작했다.

“와우.” 코토네가 감탄했다. “이건 그거지? 타라는 거지?”

“그런가 봐.” 다현이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왜 혼자라고 생각했던 거지? 우린 스물넷이나 되는데.

한 명이 넘어질 수는 있어도, 다같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건데.

여섯 멤버들은 둘씩 나눠 새끼 고래들에 올라탔다.

코토네가 신나서는 서아를 앞으로 껴안고는 먼저 탑승했고,나경은 슬슬 정신을 차려서는

무어라 중얼거리는 서연을 어찌저찌 떠밀었으며 다현은 니엔과 함께 마지막 고래에 올라탔다.

여전히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으나,

놀이기구라도 탄 것처럼 즐거워하는 니엔 덕분에 두려움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자 고래의 날개 중 일부가 비늘처럼 흩어져서는, 다현과 멤버들에게 하늘하늘하면서도 묵직한 의상을 만들어 주었다.

새끼 고래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종횡무진하며 제 어미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아, 잠깐.” 니엔이 손가락으로 거대 고래의 입가를 가리켰다. “저거 우리 애들 아냐?”

예리한 눈썰미였다. 태양에서 갓 고개를 돌린 거대 고래의 입속을, 신위를 비롯한 여섯 명의 멤버들이 누비고 있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분홍색 외계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나경이 대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게 되겠냐?” 코토네가 쏘아붙였다.

“몰라. 그냥 해 보는 거지!” 나경은 핸드폰에 얼굴을 착 붙이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누군가 받았는지 속사포처럼 말을 뱉었다.

“야, 야, 야, 야, 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고래 죽이지 마! 알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경은 이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끊겼다.”

 

한편, 또다른 곳에선….

와우. 하연은 감탄 중이었다.

하연을 비롯한 여섯 명의 멤버들이 눈을 뜬 공간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근육처럼 얇은 막으로 감싸여 있었다.

상아처럼 보이는 관이 곳곳에 꽂혀 있었으며(멤버들이 미끄러져 내려온 곳이었지만,

다시 나갈 수 있을 만큼 넓진 않았다), 방 전체가 일정한 박자로 두근거리며 뒤흔들리기도 했다.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생물체의 심장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혈관 대신 망원경이 가득한 심장.

하지만 하연이 궁금한 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망원경이 존재하는 이유도 아니었고, 자신의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였다.

이렇게 폭발적인 에너지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공연 중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멤버 전원의 의상이 순백의 마법소녀 복장으로 변경되기는 했지만, 그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듯했다.

설마 죽었나? 하연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기운이 넘치나? 여긴 무슨 저승이고?

“얘들아,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 하연이 툭 던지듯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이럴 순 없잖아.”

그 말이 자극이라도 되었는지, 축 늘어져 있던 멤버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연장에 떨어졌던 우주선의 파일럿도 동의하는 듯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진한 분홍색의 외계인이었는데, 외알 안경 너머로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이 드러났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얘들아, 여기 봐. 다른 멤버들 있다.” 별안간 유빈이 연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외쳤다.

“뭐?”

“이지우 기계치인데 용케 초점 맞췄어.” 유빈이 입을 벌리고 망원경 렌즈를 가리켰다.

망원경은 지구의 한구석을 보여 주었다. 정확히는 사고가 났던 공연장이었다….

그리고 tripleS 24명 전원이 거기 있었다. 18명이 아니라.

“근데 우리도 있잖아.” 하연이 중얼거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 같은 건가? 아니면 진짜로….

“아, 나 알 거 같아.” 지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분명 내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까부터 자꾸 슬라임 잡는 느낌이 나는 거임. 봐 봐. 저기 있는 내가 슬라임 만진 거 아냐?”

렌즈에 얼굴을 파묻은 수민이 긍정했다. “대박. 맞아. 구석에서 슬라임 만지는 중.”

“그러면 뭔지 알겠다.” 지우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유빈에게 다가갔다. “나 뺨 때려 봐.”

“뭐?”

“아, 빨리.” 지우가 추궁했다.

유빈은 두 번 묻는 법이 없었고, 예상대로 찰싹. 하는 소리가 방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파.” 지우가 칭얼거렸다.

“아프겠지, 때렸는데.” 유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지우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더니 하연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봤어?”

“상여자 정하연이, 관찰했습니다.” 일부러 익살스럽게 받아치는 하연이었다. “쟤네도 아파했어. 저기 봐.”

확대경에 비친 지구의 지우 역시 뺨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왜 갑자기 통증을 느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면 여기의 우리랑 지구의 우리가 상호작용한단 뜻이네.” 주빈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따져 물어봤자 답이 안 나올 거 같고, 지금 알아낸 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지?”

“오, 주빈이.” 수민이 감탄했다.

“아니, 지금 우리 전부 다 즐겜 모드로 반쯤 놀고 있는데 얘가 제일 의젓하다.” 유빈이 덩달아 웃었다.

“좀 본받으셔야죠, 대장님도.”

수민이 대화의 화살촉을 다시 하연에게로 돌렸다.

하연이 몇 번이고 “내가 왜 리던데?” 하고 따져 물어도 소용없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그 권위만큼은 확고한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싫지만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다섯 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분명 버거웠지만,

부탁하지 않아도 그런 믿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

“자, 그러면 정리해 보자, 정리.” 하연이 손뼉을 탁 쳤다.

“첫째, 우린 몸 자체가 날아온 게 아니라 유체이탈한 것처럼, 이중으로 분리된 거다.

둘째, 지금 저…. 저 여우인지 토끼인지 모를 애는 우리 안내자여야 하는데 뭐라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셋째, 나머지 멤버들 행방도 알 길이 없다.”

“그러면 찾아봐야지.” 연지가 정론을 들이밀었다.

“좋아. 그러면 여러분에게 미션을 주겠습니다.” 하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이 방에 있는 렌즈란 렌즈는 다 써서 우리 언니 동생들 찾아낼 것. 우리처럼 지구가 아니라 다른 공간에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새로운 임무에 착수했지만,

어디로 흩어졌는지도 모를 멤버들을 우주 전체에서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줍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주선이랑 도시만 엄청 보이네. 이렇게 많은데, 왜 지구에서는 안 보인 거지?” 지우가 던진 의문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유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질문에 답 좀 하지, 파일럿아?. 하연은 한숨과 함께 분홍 외계인을 노려보았다.

자기 딴에는 뭐라 해명하려는 듯 거듭 고양이처럼 울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한테 올 작정이었으면 통역기 같은 거라도 챙겼을 텐데. 잃어버렸나?

별안간 연지와 주빈이 화들짝 놀라하며 서로의 손을 붙들었다. “찾은 거 같은데.”

“누굴?” 하연이 화색을 띠었다.

연지가 가리키는 곳을 눈으로 좇자, 기묘한 광경이 보였다.

얇은 외벽 너머로 tripleS 멤버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신위와 설린을 비롯한 열두 명의 멤버들이 가늘고 긴 창을 들고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저만치에서는 “하지 말라니까!” 하는 나경의 외침과 함께 여섯 명의 멤버들이 추가로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여깄어!” 하연이 외쳤다.

그러나 바깥의 멤버들은 일말의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소리가 차단된 모양이었다.

“우리 갇힌 거임?” 수민이 멋쩍게 물었다.

농담조로 이야기하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라도 있다는 것처럼.

“일단 빽. 뒤로.” 하연이 심호흡했다.

tripleS가 물리적으로 갈라졌을지언정, 심리적으로는 갈라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Q. 다음 장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1. 심장이 덜컹 / 흰 외벽이 무너지지만 고래의 심장이 멈춘다
2. 워킹 데드 / 서연은 물론이고 모든 멤버들이 해골이 된다
3. 안 먹어 / 거대 고래가 멤버 전원을 토해낸다
4. 내전의 시간 / 외벽 바깥 멤버들이 대립하다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