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iverS> - Final Chapter. Christmas Together

내벽 너머 멤버들의 음성이 날카롭게 겹쳤다. 

처음에는 소현의 차분한 목소리가 간간이 튀어나왔으나, 그마저도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려 옅어졌다.

이 언니들, 진짜 뭐 하는 거야. 

하연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에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래의 심장이 하연을 순순히 내보내 준다고 하더라도, 24명을 단번에 진정시킬 자신은 없었으니까. 

정하연은 ‘공식 올라운더’였다. 거꾸로 말하면 이러한 위기 상황에 써먹을 만한 능력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채연 언니처럼 진행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연 언니처럼 발레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현 언니처럼 통솔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냐, 진짜. 

하연은 눈물이 나오기 전에 말려 버리려고 손으로 부채질을 거듭했다. 

평소대로라면 그녀의 주 무기가 되었을 자신감조차도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모코가 넘어지면서 마유를 떠밀었고, 그녀가 들고 있던 날카로운 창끝이 고래 심장의 근막을 콕 찔렀다.

우우우웅. 우우웅. 우웅. 

고래의 비명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세상이 뒤집혔다. 하연이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돌풍이 불어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하연을 비롯한 여섯 명의 멤버들은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며 우주 공간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고래의 숨구멍으로 밀려 나온 모양이었다.

뒤이어 고래가 목을 젖히더니, 소행성 하나와 맞먹는 크기의 돌덩이를 토해냈다. 

열여덟 명의 멤버들이 전부 거기 매달려 있었다. 

니엔의 “꽉 잡아!”하는 소리와 혜린의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겹쳐 들렸다…. 

설상가상으로 멤버들을 실은 돌덩이는 지구로 향했다.

저대로 가면 다 떨어져 죽겠는데. 

그러나 예정된 충돌보다 더 큰 문제는, 하연이 그 운석에 올라타고 싶다는 데 있었다. 

여섯 명이서 쓸쓸히 우주를 떠다닐 바에야 스물네 명이 모인 채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하연은 수민과 연지, 주빈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손을 꼭 붙잡으면서도 운석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쟤들은 우리가 여기 남은 줄도 모르겠지. 

하연이 속으로 자학하는데, 돌덩이에 매달려 있던 분홍 머리 멤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김채원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사람이 하연과 눈을 맞추며 벌떡 일어섰다.

“낙법!” 채원이 양손으로 입을 감싸 소리쳤다.

“뭐?!”

“낙법! 너 알잖아!”

맞다. 

하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특공무술이 채원의 대표적인 캐릭터성이긴 했어도, 본인 역시 배운 적이 있지 않았던가. 

방송상의 캐릭터에 매몰되어 자신의 진짜 능력까지 잊은 게 어처구니없었다. 

집에 가기만 하면 내가 너 캐리커처 몇 장이고 그려 줄게. 

하연은 속으로 채원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얘들아, 나 잡아!”

하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섯 명의 멤버들은 물론이고 함께 딸려 나온 외계인까지 모두가 한 줄을 이루었다. 

하연은 주변을 떠도는 우주 쓰레기를 징검다리처럼 박차고 나아갔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추진력이 멤버 전원을 공중에 붕 띄웠다가…. 소행성의 표면에 안착시켰다.

하연은 몸을 굴려 뒤늦게 떨어지는 멤버들을 받아냈다. 전원 무사했다.

“나이스!”

정확히 그 직후, 운석이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불길의 장막이 생겨났다. 

여기서부턴…. 

하연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가볍게 어깻짓했다. 

다 함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한창 떨어지는 중….

서아는 조용히 관찰 중이었다. 

떨어지는 운석과 스물네 명의 멤버들, 그리고 딸려 온 외계인 한 마리까지 모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 파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서아의 큰 힘 중 하나였다.

“괜찮아. 대부분 운석은 떨어지면서 불타니까 여기서 팍, 하고 사라질….” 

유연이 운석의 가장자리로 향했다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생각 외로 멀쩡하네.”

“오히려 좋지, 뭐.”

오랫동안 기진해 있던 서연이 입을 열었다.

“대답 들을 시간은 충분하겠네. 파일럿 데려와 봐.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좀 듣자.”

“지금?”

나경이 따지고 들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데.”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파일럿 모코로 향했다.

녀석은 한시가 급하다는 듯 방방 뛰었다가 손짓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해 보았으나, 하나같이 무용지물이었다.

“아, 맞다. 나만 들리는구나?”

혼자서 모코의 장황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코토네였다.

그녀가 왕관을 벗고는 반대로 모코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이러면 통역되겠지?”

코토네가 말하자마자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뭐예요, 대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물음부터

“어떻게 지구에서는 저 많은 우주선이 안 보이죠?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거랑 만질 수 없는 게 나뉘었던 이유는 뭐고?”

그리고 “저 고래의 정체는 대체 뭔데?”라는 질문까지, 수많은 물음표가 한데 겹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외계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은 전혀 정돈된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와, 본인이 불렀으면서!” 카에데가 지적했다.

“여러분들이 얽힐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모코가 팔짱을 끼고 가운데로 걸어갔다.

어느덧 둘러앉은 스물네 명의 멤버들이 그를 추궁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아니면 누굴 부르려던 건데?”

나경이 괜히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모코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요! 공연장에 있었잖아요!”

모코가 목줄을 건드리자 낯선 얼굴의 여자아이 사진이 홀로그램처럼 띄어졌다.

서아 본인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을 듯해 묘한 동질감이 일었다.

“쟤?!”

서연이 벌떡 일어서다가 중심을 잃고 다현의 부축을 받았다.

적어도 서아 입장에서는, 서연이 저렇게 본격적으로 언성을 높인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처음일지도 몰랐다.

“왜, 왜. 아는 애야?” 니엔이 물었다.

“팬싸 때 봤어.”

서연이 미간을 짚었다. 얼굴이 핼쑥해 해골과 같은 골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말도 못 하고 막 울더라. 그래서 이름도 몰라…. 걔는 이거랑 뭔 상관인데?”

모코가 한숨을 내쉬며 단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래요, 그래요, 통역기를 놓쳐 버린 제 탓이라고 하죠.

열쇠를 받자마자 그걸 전투에 써 버린 당신 탓도 있지만. 아무튼, 저 아이가 제니스를 깨웠어요.

우리 도시가 있는 고래 말입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고요.”

모코가 서연의 손에서 부러진 검을 빼 갔다.

“우리가 여러분과 달리 입자가 아닌 파장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라는 건 어느 정도 파악하셨을 겁니다.”

“아, 그래서~”

시온이 작게 손뼉을 쳤다.

“그래서 우리가 월면차만 못 만졌구나~ 지구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안 보였던 이유도 그거고.

그러면 파장으로 이루어진 빵이 있다고 치면 이 상태로도 먹을 수 있는 거네요?”

“그렇죠?”

모코가 미간을 구겼다.

“다행이다.”

모코의 헛기침이 이어졌다.

“아무튼, 우리는 파장 기술을 이용해 잘만 살고 있었어요. 입자 상태의 원본은 남겨두고 복제본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태양에 있던 도시가 제니스 안에 똑같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고,

여러분이 지구에 남아 있으면서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죠.”

신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에서 유빈이 지우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얼마나 완벽한 기술입니까? 입자로 된 물건에는 위협을 받지 않으니 사실상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죠.”

“기술이 아니라 고래 능력 뺏은 거잖아요!”

코토네가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그래요, 그래요, 그게 그거죠.”

모코가 툴툴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고래는 죽지도 않았다고요.

심장이 멈췄긴 하지만 언제든 다시 뛸 수 있는 상태였고.

가만히 잠만 자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거라고요!

하필이면 제니스의 심장이랑 딱 맞는 주파수로 운 소녀 때문에!”

“뭘 어떻게 울었길래…. 무슨 일이 있었길래….”

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확실한 건 제가 지구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하기 직전에, 그 애가 먼저 세상을 떠 버리려고 했다는 거예요.

콘서트도 운석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는 간 거고.“

“애 울음소리랑 공명해서 심장이 뛰었다? 목소리로 유리잔 깨뜨리는 것처럼?”

유연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나는…. 나는 이런 식의 해명을 용납할 수가 없어. 따져 봤자 소용없겠지만, 아무튼 용납할 수 없어.”

“그래서, 그 애를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서연이 한 손으로 유연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가둬야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코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고갯짓했다.

“그러면 고래가 다시 잠에 빠집니다. 열쇠를 써서, 그 아이를 제니스의 로켓에 넣기만 하면 돼요.

우리 선조 때부터 해 왔던 일이에요. 스물네 번이나 했다고요.”

“벽화가 그 내용이었어?”

신위가 다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보고 심장 찌르라고 했잖아.”

“그 정도로는 안 죽어요. 그냥 하는 의식이죠.

다른 모코들 입장에선 수백 년만에 처음 맞이하는 손님이었을 테니…”

모코가 말끝을 흐렸다.

서연의 눈썹이 올라갔다.

“됐고, 그러면 그 애를 가두면 어떻게 되는데? 우리처럼 뭐, 파장 형태로 분리시켜서 그 분신만 가두는 거야?

원래 애는 지구에서 멀쩡하게 살아가고?”

모코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섬찟한 암시에 장내가 술렁였다.

“지금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모코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마침 지구로 내려가는 김에 제대로 할까요? 그 아이를 저한테 넘기세요.

그러면 여러분을 원상 복귀시키겠습니다. 그 뒤로는 살던 대로 사시면 돼요. 아이돌 노릇 하시라고요. 제가 알 바입니까?”

 

10분 후

서아는 일부러 열띤 논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모코의 제안을 수락할지는 다른 멤버들이 알아서 결정할 거였다.

서아는 언제나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다는 평을 들어왔지만,

그런 칭찬 아닌 칭찬에 서아를 묶어 두려는 의도가 있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해왕성에서 다현이 했던 말처럼, 막내가 할 일은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밖에 없었다.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싶어도, 가만히 있는 게 미덕이었다.

운석 가장자리에 이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조만간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더니 누군가 서아의 옆에 앉았다.

“뭐 해, 불멍 때려? 아우, 귀여워.”

린이었다.

서아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린이 자기를 귀여워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만큼은 거북스러웠다.

“왜, 무서워? 조만간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좀 이상하잖아.”

서아가 입을 쭉 내밀었다.

“그 여자애가 울어서 저 고래…. 제니스가 깨어난 거라며.

그 여자애도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운 거일 거잖아. 그런데 걔를 희생양 삼아 세상을 구한다고?”

개인의 슬픔으로 우주가 위기에 처했다면, 왜 그 아이의 행복을 우주의 안위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분명 둘은 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나? 서아는 모코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좀 이상하긴 하다.”

린이 서아의 머리를 토닥였다.

“좀 불편하면, 가서 말해 보는 건 어때?”

“굳이?”

서아가 되물었다.

“손해 볼 건 없잖아.”

린이 으쓱했다.

그런가?

서아는 마음을 다잡고 언니들의 모임 한복판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계획을 구체화했고,

마침내 정중앙에 도착했을 때는 서아의 본심이 단순한 문장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무거운 심호흡이 이어졌다.

“우리가 남아요.”

그러자 모코를 포함해 현장의 모두가 서아를 돌아보았다.

“해왕성 고래들도 자기네 엄마를 보고 싶어 했잖아요.

그런데 꼭 제니스를 다시 잠재워야 할까요? 기왕 일어난 김에, 조금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자고요.”

서아는 고개를 저으며 모코가 끼어드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만약에 제니스가 움직여서 도시가 흔들리는 게 문제면, 안 그러도록 매끄러운 코스를 만들어 주면 되잖아요.

같이 살아요. 잘못되면 우리가 얻은 힘으로 진정시키기라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같이 남기만 하면 돼요. 아무도 건드릴 필요 없이.”

서아는 어깨를 쭉 펴고 반응을 기다렸다.

“서아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소현이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마음은 알겠는데, 이거 평생 집에 가냐 못 가냐를 결정하는 문제야.”

알아요.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 마음을 정했어요.

서아의 의견에 가장 먼저 동조한 것은 주빈이었다.

“맞아, 우리가 여기 남아도 평생 주변 사람들이랑 단절되는 건 아니잖아.

지구의 우리들이 뭔갈 경험하면 그 기억이랑 감정이 고스란히 여기의 우리한테도 전해질 거고….”

지우를 비롯한 멤버들이 서아와 주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투표해요.”

서아는 계속 몰아붙이기로 했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각자 좀 생각했다가, 그 애를 데려오는 대신 우리가 남을지 말지를 정하죠.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우린 다시 내려가는 걸로 해요.”

장내가 술렁이더니, 이내 모두가 서아의 제안에 수긍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서아는 신위와 혜린이 걱정어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부터 유연과 서연의 깊이 있는 대화,

거기에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끼어든 채원 등 다양한 형식의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운석은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해, 바닥에 난 틈으로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제 나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고, 큼직한 산맥이나 도시에 눈이 쌓인 것 역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나? 아니면 이브?

서아는 균열로부터 한 발짝 물러났다. 잃게 될 것이 너무 많은 듯했다.

제니스에 남기로 하면 다시는 인형 토토도 손에 쥘 수 없을 테고, 맛깔나는 비빔냉면도 다시는 먹지 못하게 되리라.

가족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같은 건 당연히 존재할 수 없을 테고 말이다. 본인이 제안해 놓고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충분히 감내해 낼 수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걸 내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애당초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직업 여부를 떠나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보기만 해도 힘을 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간접적으로라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팠다.

이제 명실상부 그런 사람이 되었으니, 평소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였다.

서아는 자기보다 어린 팬의 삶을 지켜 주기로 마음먹었다.

 

제한 시간이 끝나고, tripleS 전원은 원을 그려 섰다. 서로 등을 마주보게 뒤로 돈 다음 다같이 눈을 감았다.

원의 중심에서 모코가 사회를 보았다. 그는 한참 동안을

“도대체가 사고방식이 정상이 아니야, 다들.”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남아 제니스와 모코의 수호자가 되고자 하는 분, 손 드세요.”

“그러면…. 문제의 원흉을 로켓에 가두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분.”

그리고 찰나의 정적이 있었다.

“됐습니다.”

모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만장일치네요.”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마유나 니엔처럼 씁쓸하게 웃는 이들도 있었고,

설린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도 있었으며 나경처럼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반응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마음만큼은 전부 같다고 해도 될 듯했다.

옳은 선택을 해서 다행이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일 처리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코토네가 새끼 고래들을 부르자는 의견을 냈고, 이에 하연이 돌고래와 같은 고음의 휘파람으로 녀석들을 불러들였다.

신위와 다현은 멤버들을 질서정연하게 그 위에 태웠으며, 설린은 빠지는 멤버가 없도록 일일이 인원 체크를 했다.

서아가 줄곧 알아 왔던 언니들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한층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잘했어.” 서연이 서아를 새끼 고래에 태우면서 말했다. “잘한 거야.”

“이번에 잘한 건 맞지.” 서아가 머뭇거렸다.

“그런데 앞으로는 계속 이 우주에 살아야 할 거잖아. 내가 의견 낸 게 실수한 거면?”

서연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씩 웃으며 서아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런 거 수습하라고 내가 있잖아.”

한결 밝아진 어조였다.

“어디서 다 큰 척하려고 그래. 한참 멀었어.”

그 말과 함께 새끼 고래들이 힘차게 날아올랐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위세를 과시하던 운석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아는 그 돌덩이들이 촛농처럼 완전히 녹아내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앞을 보았다.

우주에 수놓인 별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눈송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연이 웃었다.

제니스에 도착한 이후, 멤버들은 서아의 계획을 어떻게 실행할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긴 시간 후 tripleS가 다다른 결론은 이랬다.

우연에 의해 쪼개졌던 것처럼, 여섯 명씩 네 팀으로 나뉘어 각각 달, 태양, 그리고 해왕성으로 향한다.

모코들과 함께 세 천체에 등대를 세워, 제니스가 정해진 코스만을 안정적으로 돌 수 있게 한다는 게 요지였다.

한 팀이 제니스에 남아 그 심장을 관리하고, 모코들이 섣부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 역시 확정되었다.

“그리고 어차피 변신 풀릴 것 같지 않으니까,”

설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모코들, 나중에는 제니스에서 완전히 떠날 수 있게, 도시 재건도 도와주는 게 어때요?

그러면 제니스도 해왕성에서 계속 살 수 있잖아.”

멤버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심지어는 돌아오는 내내 언짢은 표정을 짓던 파일럿 모코조차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서아의 발치에서 내뱉은 푸념은 이랬다.

“아주 슈퍼히어로들 납셨어.”

히어로.

비아냥이 분명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서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돌 데뷔가 확정되었을 때처럼, 오랜만에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tripleS가 넷으로 쪼개진다는 것은 낯설었지만,

언제나 스물넷이자 하나로서 활동해 왔듯 넷이자 하나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이제 걱정거리는 사라졌다.

재밌을 것 같은데?